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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밴드가 상상한 디스토피아, 페퍼톤스 태풍의 눈 리뷰

페퍼톤스는 우울증을 위한 뉴테라피 2인조 밴드라는 모토를 갖고 있다. 그들은 모토에 따라 발랄하고 행복한 음악을 해왔다. 유토피아에 가까운 음악이 그들의 전공 분야였다. 하지만 2020년 시작된 코로나는 모두에게 절망을 안겼고, 페퍼톤스 역시 재앙을 피해가지 못했다.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었고, 앞으로 언제 공연할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페퍼톤스가 필요한 시기에 우리는 만날 수 없었으니 아티스트도 팬도 우울한 상황이었다. 이런 절망 속에 페퍼톤스가 무슨 노래를 할 수 있을까, 그들은 고민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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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테나 식구와 함께한 Everything is OK

2020년 4월 페퍼톤스는 다른 안테나 뮤지션들과 Everything is OK를 리메이크했다. 늘 그랬듯 이 노래도 많은 사람들을 위로했다. 다 괜찮을 거라는 노랫말처럼 코로나는 금방 괜찮아질 것 같았다. 그러나 코로나는 생각보다 끈질기게 이어졌다. 우린 괜찮지 않았다. 앞으로 괜찮아질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니 ‘다 괜찮을 거야’라는 막연한 위로는 한계가 있었다. 페퍼톤스는 다른 방향을 모색해야 했다.

그들은 상황을 맞닥뜨리기로 했다. 거대한 재앙 앞에서 무력한 우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재앙에 맞서든 재앙이 끝나길 기다리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7집 앨범 세계관을 디스토피아로 설정하되 희망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7집의 타이틀곡 ‘태풍의 눈’에서 거듭 강조되는 단어는 단연 ‘눈’이다. 태풍의 ‘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대도 ‘눈’을 크게 뜨라고, 그러면 ‘눈’이 부시게 찬란한 빛이 올 거라고 외친다. 절망을 마주하되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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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메시지는 음악에서도 드러난다. 긴장감 가득한 벌스, 프리코러스로 재앙을 표현하고 따뜻한 후렴으로 희망을 표현한다. 우선 인트로에서는 기타가 잔잔하게 연주되며 평화로웠던 일상을 그린다. 그러다가 벌스에서는 기타가 저음을 빠르게 두들기며 긴장감을 조성하기 시작한다. 벌스와 프리코러스에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도무지 모르겠는 불안한 세상을 묘사한다. 벌스와 프리코러스가 지나면 나오는 후렴은 대조적으로 무척이나 따뜻하다. 정석적인 코드를 함께 합창 화음을 넣어, 뮤지컬 넘버 같이 벅찬 사운드를 연출한다. 마침내 태풍이 가고 밝은 햇살이 우리를 감싸주리라는 희망을 노래한다. 비바람을 맞다가 난로 앞에 앉았을 때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지듯이, 초조한 벌스 끝의 따뜻한 후렴은 지친 마음을 끌어안아준다.

‘태풍의 눈’은 재앙 앞에 우리가 너무 작은 존재라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절망 밖에 없지만, 한줄기 빛이 있을 거란 걸 믿어보자고 말한다. 신재평의 기교 없이 정직한 보컬은 마치 연약한 소년 같아서 이 결연한 의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해낸다.

7집 앨범이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 기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페퍼톤스가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 궁금했다. 기존 밝은 음악과는 완전히 다른 음악일까, 같은 선 상에 있을까. 타이틀 곡 ‘태풍의 눈’을 들으니 의문이 풀렸다. 페퍼톤스는 태풍 속에서도 따스한 희망을 찾아내는 밴드였다. 가장 낮은 곳에서 쓰러져가는 사람들까지 찾아내어 일으키려 하는 것이었다. 페퍼톤스답다.


차분한 척 그만하자. 난 사실 진정이 안된다.

아니 진짜 미쳤네. 이렇게 한 번에 꽂힌 노래는 정말 오랜만이다. 계속 반복 재생해도 안 질려. 빈말이 아니라 어떻게 들으면 들을수록 좋은 거지… 다른 곡 들을 여유가 없다.

타이틀 곡이 신총무님 보컬이라니 이건 덕후 죽으라는 소리 아니냐구ㅠㅠㅠㅠㅠㅠㅠ 쿠구궁! 발린다 진짜. 신총무님 목소리가 한 줄기 빛이요 희망이에요.

합창…. 최고야…. 화음… 뮤지컬… 으악… 이미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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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들어보겠다고 경건하게 앉아서 뮤비를 틀었는데, 이 곡은 물구나무 서면서 들었어도 꽂혔을 것 같다. 진지하게 역대급이고 최고다. 어떻게 음악 하나로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지. 너무 귀해서 함부로 듣고 싶지 않지만 반복 재생을 멈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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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명반을 예고한 신총무님의 게시글

총무님… 저 선생님 믿어요….. 나는 두 분이 희대의 망작을 들고 와도 좋아할 자신이 있는데 희대의 띵작을 들고 오면 어쩌자는 거야…. 돌아와주셔서 고맙고 띵작 들고와주셔서 고맙습니다. 8집은 명작 아니어도 되니까 다시 돌아오기만 해줘요.

콘서트 가고 싶다. ㅠㅠㅠㅠ 한국 가고 싶다… 크리스마스 시즌 비행기 값 엄청 비싸던데 연말 공연 가야되는데….아아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