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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고 입시 썰

과학고 준비를 늦게 시작한 편이다. 과고를 준비하는 많은 친구들은 빠르면 초등학교 고학년 때, 늦어도 중학교 1-2학년 때 과고 입시 전문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다. 나는 중학교 3학년 초에 학원에 등록했으니 매우 늦은 편이었다. 입시가 3학년 중후반에 이뤄지니, 실질적으로 준비할 시간은 6개월 정도 밖에 없었다.

원래부터 학원에 다니던 친구들은 곧잘 문제를 풀어냈다. 나는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너무 빨리 지식을 습득하려다 보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공식만 겨우 외워 풀었다. 그래서 처음엔 제일 낮은 반을 갔다. 그런데 차차 월말평가 점수가 올랐다. 어느 달은 월말평가에서 학원 평균 정도를 받아 조금 높은 반에 가게 되었다. 뿌듯해하면서 주말에도 하루종일 공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상담 시간, 한 학원 선생님이 “넌 너무 늦게 시작해서 어차피 과고 못 가.” 라고 했다. 선생님은 서울대 출신이었는데, 그 시절엔 내 주변에 서울대 나온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대단히 똑똑해 보였었다. 평소 존경하던 선생님이 아무렇지 않게 실패할 거라고 단정지어 말하는 게 충격이었다.

다행히도 중3 때 나는 반항심과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아이였다. 선생님의 말에 ‘그래, 난 어차피 과고는 안되니까 다른 학교를 알아봐야지.’ 하고 포기했다면 과고에 못 갔을 것이다. 하지만 난 ‘네가 뭔데 날 단정해?’ 하고 부글부글 끓었다. 이를 악물고 계속 학원에 다녔고 문제를 풀었다.

이윽고 과고 입시 날이 다가왔다. 그 해 면접은 이상하리만큼 쉬웠다. 고등학교 과학 내용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과도한 사교육을 막기 위해 그 해부터 과고 입시 평가 기준에서 선행학습과 올림피아드 성적을 제외한 것이었다. 학원에 오래 다니지 않았던 나에게 불리한 기준들이 사라졌고 운이 좋게도 과고에 합격했다. 합격을 통해 선생님이 틀렸단 걸 증명할 수 있어서 통쾌했다. 나한테 그런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하실진 모르겠지만.

남의 말에 내 인생을 맡길 필요가 없다. 남의 가능성을 쉽게 제단하고 깎아내리려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아도 된다. 그런 사람들은 고작 하나의 인생일 뿐인 자기 경험에 기대어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수십억의 인생이 있고, 별별 일이 다 일어난다. 노력하다 보면 어쩌다 운이 닿아서 기회를 잡게 되기도 한다. 그러니 누가 뭐라 하든 소신대로 쭉 밀고 나갔으면 좋겠다.